빠뜨리언노 뵐의 <구월의 일요일>

구월의 일요일

모기의 입이 돌아간다는 팔월 처서 무렵에서 구월 초순까지는 일 년 중 가장 풍성한 구름과 기억에 남을만한 하늘과 노을을 볼 수 있는 시기다. 구월의 어떤 일요일, 그날의 구름과 하늘과 노을이 그랬다. 사건의 시작은 그날 아침 ‘미술학교’ 툇마루에서부터였다. 내가 서있는 뜰안에서 별채의 툇마루까지는 아이들의 손뼘으로도 스무 번이면 닿을 수 있는 가까운 거리다.

여기서 잠깐, 나의 소개가 늦었다. 나는 배롱나무다. 한여름에 선홍빛 꽃을 달고 있는 나무가 있다면 배롱나무야 라고 불러보라. 무뚝뚝한 나무가 아니라면 살짝 잎사귀를 흔들 것이다. 이 동네 사람들은 나를 간지럼나무라고도 부른다. 나무 밑동을 손가락으로 살짝만 긁어도 잎사귀를 뒤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그러나 사실을 말하자면 사람들이 나의 간지럼을 믿고 싶어하는 것 같아, 간지럽지 않아도 간지러운 척을 해주고 있을 뿐이다. 그러니 사람들이 나를 간지럼나무라고 말하는 것도 틀리지는 않은 말이다. 누가 와서 나를 긁어주면 나는 언제라도 간지러운 척을 해줄 것이다. 어쨌든 나는 간지럼나무다. 그것도 사람을 실망시켜주고 싶지 않은 간지럼나무. 나는 무뚝뚝한 나무가 아니다.

마루에서 내가 달고 있는 빨간꽃과 내 발치에 심어져 있는 봉숭아꽃에 눈길을 주고 있던 한 여자 아이가 별채를 향해 소리쳤다. (그 여자 아이를 봉숭아라고 부르자.) “햇살이 눈부셔. 하늘은 파랗고, 이불을 타고 조각 구름 속을 헤치며 날기 좋은 날이야.” 아이들이 하나둘 눈을 비비며 툇마루로 나왔다. 보름에서 하루쯤 이지러진 달이 마을 앞 산중턱에 걸릴 때까지 별채가 시끄러웠던 것으로 봐서 모두들 늦게 잠을 잤을 것이다.

눈썹이 유난히 까만 사내 아이가 하늘을 올려다 보며 말했다. (그 남자 아이를 검정눈썹이라고 부르자.)

“이불을 타고 하늘을 나는 것은 이제 그만하고 싶어. 비누곽에 살고 있는 청개구리도 풀섶에만 살기 지겨워 비누곽 속에 산다고 했어. 우리가 미술학교에 온 것도 청개구리의 생각과 비슷한 거 아냐. 언제까지 이불을 타고 하늘을 날기만 할 거냐고. 그믐밤 칠흑의 어둠 속에서 하늘을 나는 거라면 몰라도”

“그래도 오늘 같이 하늘이 맑은 날은 강이 끝나는 곳으로 가서 저녁의 노을을 바라볼 수 있지 않을까?”

봉숭아가 토를 달았다.

“좋아, 어제 놓친 팔뚝만한 물고기를 잡으로 가고 싶지만 오늘은 이불을 타고 하늘을 날아보자.”

아이들은 이불 위에 앉아 시동을 걸었다. 그러나 이불은 시무룩하게 늘어져 있었다.

“왜 이러지? 이불도 날기가 지쳤나? 저 간지럼나무도 간지럼에 지쳤을 때는 꼼짝도 않더라고.”

맞는 말이다. 간지럼나무라고 해서 언제까지라도 인간을 위해 간지러운 척을 해줄 수 없는 일이다. 혹시 이불도 그런 것이 아닐까. 사람들이 날자고 한다고 해서 언제까지라도 날아줄 수 없다는 것이 이불의 생각은 아닐까. 그러나 답은 봉숭화의 입술에서 나왔다.

“이불 안의 솜이 방안의 습기를 다 빨아들였기 때문에 이불은 날기가 힘든 거야. 이불을 건조시켜 이불의 무게를 덜어주는 게 날기 위한 선행조건이라고.”

“서냉조껀이 뭐야.”

“서냉조껀이 아니라 선,행,조,건”

봉숭화랑 검은눈썹의 대화는 항상 저런 식이다.

얼마 전에도 그랬다.

“넌 항상 한눈을 팔더라.”

“내 눈은 얼굴에 멀쩡하게 붙어있는데 어디다 팔았다고 그래.”

그때 청개구리의 비눗곽이 들썩거렸었다.

자, 이불을 들고 옥상으로 가자고.”

그때 비누곽 속에서 청개구리가 튀어나왔다. 청개구리는 맹꽁이처럼 말끝을 두번 발음한다.

“이불을 타고 하늘을 나는 것은 저 맑은 하늘에 대한 모독이라고. 일요일 아침에는 제발 잠 좀 자자고. 잠 좀. 일요일은 쉬는 시간이라고. 쉬는 시간이라고“

”너는 매일 쉬잖아?“ 검은 눈썹이 입을 삐죽였다.

”그래도 오늘은 일요일 아침이야. 일요일 아침“

무엇을 만드는지 작업장 쪽에서 망치질 소리가 들리다가 그쳤다. 아이들이 넌 이불에 구월의 햇살이 쏟아지고, 바람에 불 때마다 마을앞 산자락이 아뜩하게 비쳤다. 청개구리도 비눗곽 속으로 돌아가 다리를 벋고 누웠다. 뒤뜰의 민달팽이도 호박잎을 말아 몸을 깊이 감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