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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목의 일

이 시리즈 · 오늘도 짭니다 · 4화 (전체 4화)

"나무로 짜고, 코드로 짜고, 문장으로 짭니다."

  1. 1화 부처님 손바닥
  2. 2화 오늘도 짭니다
  3. 3화 형식을 계속 바꾸면 차이는 소음에 묻힙니다.
  4. 4화 평목의 일

쌀가게가 동네마다 있던 시절 이야기인데요. 되질에는 반드시 따라붙는 도구가 하나 있었습니다.

됫박에 쌀을 부으면 윗면이 수북하게 쌓이는데, 그 위를 나무 막대로 쓱 밀어 테두리와 같은 높이로 고르는 거예요.

그 막대의 이름이 평미레입니다. 한자로는 평목(平木)이라 씁니다. 밀어서 평평하게 하는 나무.

세상에서 가장 단순한 도구 중 하나이고, 생김새만 보면 그냥 방망이죠.


이 도구를 가리키는 한자가 따로 있습니다.

개(槪). 말과 되를 고르는 도구라는 뜻이고, 나무 목(木) 변이 붙은 이유가 바로 이 막대이기 때문이에요.

그리고 이 글자가 개념(槪念)의 개입니다. 개론(槪論), 대개(大槪), 기개(氣槪)에 들어 있는 개가 전부 이 글자예요.

개념이란 평미레로 고르게 민 생각이라는 뜻이 되는 거죠. 그러니까 개념은 기준을 이야기하는 겁니다.

누가 개념이 없다고 하면, 그건 기준이 없다는 이야기거든요.

됫박에 테두리가 있어야 되질이 되듯, 생각에도 넘침과 모자람을 가려 줄 금이 있어야 한다는 거예요.




그런데 되질하는 손을 가만히 떠올려보면요, 평미레는 깎는 도구가 아닙니다. 미는 도구예요.

막대가 됫박 위를 지나갈 때 수북한 곳의 낟알은 그냥 바닥으로 떨어지는 게 아니라, 막대 앞에서 구르면서 움푹한 곳으로 먼저 쓸려 들어갑니다.

빈 데가 채워지고, 남는 것만 밖으로 밀려나요.


덜어냄과 채움이 한 동작 안에 있는데, 그 동작 안에서도 채움이 앞섭니다.

평미레는 모자란 곳을 다 채우기 전에는 아무것도 버리지 않습니다.

평미레가 만드는 건 모자란 평면이 아니라, 넘치는 것으로 모자란 것을 채운 평면이에요.

그래서 됫박의 한 되는 야박한 한 되가 아니라 정직한 한 되가 됩니다.


공방 이름을 평목으로 지은 게 이 균형 때문이었습니다.

넘침도 모자람도 없는 균형. 모자란 것은 채워 주고 넘치는 것은 덜어내는 도구.

목수가 하는 일이 바로 이 일이거든요.

짜임이 정확히 이 구조입니다. 장부를 낸다는 건 한쪽 부재를 덜어내는 일이고, 장부구멍을 판다는 것도 덜어내는 일이에요.

그런데 두 부재가 만나는 순간, 한쪽에서 덜어낸 자리를 다른 쪽이 들어와 채웁니다.


서로의 모자람을 서로의 몸으로 채우는 것, 그게 결구입니다.

못이나 접착제로 부족을 바깥에서 메우는 게 아니라, 부재끼리 넘침과 모자람을 주고받게 하는 거죠.

창살 하나하나는 가늘고 약한데 짜여서 문이 되면 백 년을 버티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균형은 양쪽을 똑같이 깎아 낮추는 일이 아닙니다.

넘치는 곳의 힘이 모자란 곳으로 흘러가도록 길을 내는 일이에요.

평미레는 그 일을 됫박 위에서 하고, 목수는 나무 안에서 합니다.

공방 소개에 이렇게 적었습니다.


곡식을 되나 말로 잴 때, 수북한 윗면을 밀어 고르는 도구를 평미레라고 합니다.

이를 한자어로 평목(平木)이라 씁니다.

평목은 넘쳐도 아니 되고, 모자라도 아니 되는, 모자란 것은 채우고 넘치는 것은 덜어 내 균형을 잡아 주는 일을 합니다.

목수가 하는 일도 다르지 않습니다.

평목의 목수들은 시간에 마모되지 않고 시간 속에서 품격이 더해지는 창호와 가구를 만들고자 합니다.


오늘도 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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