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이 속습니다
이 시리즈 · 다시 잡습니다 · 1화 (전체 3화)
"자로 되는 일이 있고, 눈으로만 되는 일이 있습니다."
- 1화 눈이 속습니다
- 2화 맞을 수가 없습니다
- 3화 아무도 그 자리에 서지 않습니다
세살·정자살의 가로세로
문을 하나 짜려면 먼저 살을 나눕니다. 세살이든 정자살이든 울거미 안에 칸을 몇 개로 나눌지 정하고 간격을 잡는 일인데,
계산 자체는 어려울 게 없습니다. 안쪽 치수를 칸 수로 나누면 숫자는 바로 나옵니다.
그 숫자대로 나눠서 세워보면 칸이 납작해 보입니다.
자로 재면 같습니다. 다시 재도 같습니다. 자를 내려놓고 물러서서 보면 또 가로가 넓고 세로가 짧습니다.
그래서 세로를 조금 늘려 잡습니다. 얼마나 늘리느냐는 정해진 값이 없습니다. 문이 크면 이만큼, 작으면 저만큼, 그때그때 다르게 잡습니다.
같은 세살문이라도 크기가 바뀌면 비율을 처음부터 다시 봅니다.
여기서 갈립니다. 잘 나온 문을 하나 놓고 크기만 키우면 자로는 정확한데 눈에는 틀립니다.
도면으로 넘어가는 것은 숫자뿐이고, 숫자는 크기가 바뀌면 같이 틀리니까요.
알고 있던 이야기였습니다
사람 눈이 자와 다르게 본다는 것, 저는 원래 알고 있었습니다. 이런 데 관심이 있어서 자료를 찾아 정리해두기까지 했으니 몰라서 못 본 것은 아닙니다.
이미 백몇십 년 전에 정리된 이야기입니다. 같은 크기의 정사각형인데 세로줄로 채우면 넓어 보이고 가로줄로 채우면 높아 보인다는 것. 빈 자리보다 채워진 자리가 더 커 보이기 때문이라는 설명이 붙어 있습니다. 살로 채운 칸이 자와 다르게 보이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활자 쪽에는 더 실감 나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가로획이 세로획보다 두꺼워 보이기 때문에, 알파벳 소문자 o를 고르게 보이도록 그리려면 세로 쪽을 더 두껍게 그려야 한다는 겁니다.
활자 만드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오래된 상식이었고, 근래에야 실험으로 확인됐습니다.
알고는 있었습니다. 그런데 아는 것과 손이 하는 일은 달랐습니다.
그림으로 알던 때에는 눈이 속는다는 게 재미있는 이야기였습니다. 문짝 앞에서는 이야기가 아니라 일거리가 됩니다.
몇 번을 재도 같은 칸이 몇 번을 봐도 납작하고, 답을 알고 있어도 눈은 그대로입니다.
알아서 고쳐지지 않으니 결국 손으로 고치는 수밖에 없습니다.
조상들도 알고 있었습니다
옛 문을 재보면 세살이든 정자살이든 칸이 정사각이 아닙니다. 세로가 조금 깁니다.
그리고 그 정도가 하나로 정해져 있지 않습니다. 문이 커지면 달라지고, 손마다 다릅니다.
정해진 값이 있었다면 어느 문이나 같아야 합니다. 다르다는 것은 문 앞에서 그때그때 잡았다는 뜻입니다.
지금은 이런 것을 착시라고 부릅니다. 실험도 하고 논문도 있습니다. 조상 목수들에게는 그런 말이 없었습니다.
말이 없었다고 모르셨던 것은 아닙니다. 문마다 다시 잡아놓은 그 비율이, 알고 계셨다는 증거입니다.
눈이 자와 다르게 본다는 것을 알았고, 얼마나 다르게 보는지는 문에 따라 또 다르다는 것까지 알았던 겁니다.
이게 안목입니다.
몇 치로 잡는지 외워두는 것이 아니라, 문 앞에서 다시 잡을 수 있는 것.
출처
- Helmholtz, H. von, Handbuch der physiologischen Optik (1867)
- de Waard, J. M., Van der Burg, E. & Olivers, C. N. L., "A Thickness Illusion:
- Horizontal Is Perceived as Thicker than Vertical," Vision 3(1),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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