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바닥도 눈입니다
이 시리즈 · 오늘도 짭니다 · 7화 (전체 8화) 연재중
"짜면서 드는 생각을 적습니다"
어제 신문에서 AI 기사를 하나 읽었습니다. AI가 수학 난제를 풀었고, 안 쓰는 구독을 알아서 찾아 해지까지 해 준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기사 중간쯤에 사진기와 인상주의 이야기가 나오더군요. 사진기가 처음 나왔을 때 들라로슈라는 화가가 "이제 회화는 죽었다"고 했다는 일화인데, 실제로 그렇게 말했는지는 확실하지 않다고 합니다.
제가 AI 이야기를 할 때 자주 꺼내는 이야기라 반가운 마음으로 읽었습니다. 기사는 그래서 회화가 살아남았다는 쪽으로 정리를 하는데, 저는 그 대목에서 생각이 조금 다른 데로 갔습니다. 신문을 내려놓고 그 생각을 한참 따라가 봤습니다.
카메라는 원래 그림 그리는 도구였습니다. 깜깜한 방에 작은 구멍을 내면 바깥 풍경이 반대편 벽에 거꾸로 비치는데, 화가들은 오랫동안 그걸 보며 따라 그렸습니다. 비친 그림은 빛이 사라지면 같이 사라지니 손으로 옮겨야 했지요. 그러다 1839년에 그 그림을 약품으로 붙잡아 두는 방법이 나왔습니다. 손이 없어도 그림이 남게 된 겁니다.
그때 겁을 먹은 건 주로 똑같이 그리는 솜씨로 먹고살던 화가들이었을 겁니다. 초상화를 그려 주던 사람들, 붓 자국 없이 매끈하게 그려 살롱에 걸던 사람들이요. 인상주의 화가들도 처음엔 그 살롱을 보고 그림을 배웠습니다. 그러다 똑같이 그리는 일을 사진에 넘길 수 있게 되자, 무엇을 볼지, 왜 그렇게 보는지를 붙들었습니다. 그래서 빛이 머무는 순간을 그리러 밖으로 나갔지요. 그러니 회화가 살아남았다기보다는, 회화가 하던 일이 바뀌었다고 하는 게 맞을 것 같습니다.
요즘 AI를 보면 그때 생각이 납니다. 컴퓨터는 오랫동안 제 일을 돕는 도구였고, 무엇을 그릴지는 늘 제가 정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말 한 줄 적어 넣으면 결과가 그냥 나옵니다. 다만 별다른 주문 없이 맡기면 대개 무난한 결과가 나옵니다. 수많은 자료에서 가장 그럴듯한 쪽을 고르다 보니, 어디서 본 듯한 평균 쪽으로 기우는 거지요.
사람 눈은 좀 다릅니다. 빛에는 원래 색이 없고 파장만 있습니다. 그게 눈을 지나 머릿속에 들어가야 빨강이 되고 파랑이 됩니다. 그래서 사람마다 조금씩 다르게 보고, 한 사람 안에서도 색은 자꾸 바뀝니다. 물감을 오래 만진 사람은 남들 눈엔 그냥 회색인 걸 여러 가지로 보고, 갖고 싶은 게 생기면 그 색이 자꾸 눈에 밟힙니다. 나이가 들어 수정체가 누레지면 들어오는 파란빛이 줄어드는데, 그래도 머리가 그걸 메워 파랑을 여전히 파랑으로 보여 준다고 하고요.
AI가 아는 빨강은 사람들이 빨강이라고 불러 온 것들의 합의입니다. 숫자로 된 색값이고, 수많은 사람이 이름 붙인 걸 모은 평균이지요. AI는 그걸로 그리지만 정작 빨강을 볼 눈은 없습니다.
사람이 그릴 때는 다릅니다. 물감을 섞다가 "이거다" 하고 멈추는 그 순간, 판단하는 건 그 사람 눈입니다. 남과 조금 다르게 보고, 어제와도 조금 다르게 보는 그 눈이 색을 정합니다. 그래서 사람이 칠한 색에는 그 사람이 본 방식이 묻어 납니다. 보는 사람도 자기 눈으로 다시 봅니다. 그림 한 장 앞에서 서로 다른 두 눈이 만나는 셈입니다.
그런데 그 눈은 자라고 배우고 바라는 데 따라 길러지는 것이라, 무엇을 보며 기르느냐가 중요해집니다. 하루 종일 화면이 골라 주는 색과 집과 무늬만 보고 지내면, 눈도 그 무난한 쪽을 닮아 가지 않을까 싶습니다. 저는 기계가 평균을 내는 것보다 그게 더 마음에 걸립니다. 그래서 요즘은 뭔가가 좋아질 때, 그게 내 삶에서 온 건지 화면에서 온 건지 가려내 보려고 합니다.
공방에서 나무를 만지다 보면 이 생각을 자주 합니다. 같은 나무에서 켠 판도 결이 다르고 옹이 자리가 다르고, 다 만들어 단 뒤에도 해가 갈수록 색이 깊어지고 여름이면 냄새가 다시 올라옵니다. 대패질을 하고 나면 저는 손바닥으로 한 번 쓸어 보는데, 눈으로는 매끈해도 손은 어디가 걸리는지 먼저 압니다. 제게는 손도 눈의 한 부분입니다. AI는 결이라는 말은 알아도, 그걸 쓸어 볼 손바닥은 없지요.
디자인을 하다 목수가 됐지만, 그렇다고 기계를 멀리하는 건 아닙니다. 저희 공방은 CNC로 창호를 짜고, 누구든 자기 방에 맞는 무늬를 그려 볼 수 있는 평목 스튜디오라는 설계 도구도 제가 만들었습니다. 다만 그 도구도 어떤 무늬가 좋은지까지 대신 정해 주지는 못합니다. 평균적인 걸 고르면 평균적인 게 나올 뿐이지요.
공방에서 판 하나를 고를 때 저는 몇 번을 뒤집어 봅니다. 어느 면을 방 쪽으로 낼지는 도면에도 설계 도구에도 없고, 이런저런 것을 보며 늙어 가는 제 눈이 정합니다. 요즘 무언가를 고르실 때, 그 눈이 누구 눈인지 한 번쯤 물어보셨으면 좋겠습니다.
신문을 읽다 말고 생각이 여기까지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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