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창호 -내 대패는 일본대패입니다
이 시리즈 · 따져 봅니다 · 5화 (전체 5화)
"오래 굳은 것일수록 한 번 더 들여다봅니다"
- 1화 솟을창인가, 소슬창인가 — 올바른 표기와 어원
- 2화 도깨비는 뿔이 없다
- 3화 전통창호 -왜 이 말이 이렇게 흐릿한가
- 4화 전통창호 -조상이 만든 그대로여야 하는가
- 5화 전통창호 -내 대패는 일본대패입니다
작업대에 대패가 여러 자루 있습니다. 전부 일본대패입니다. 조선대패는 한 자루도 없습니다.
저만 그런 게 아닙니다. 지금 이 나라에서 창호를 짜는 목수 치고 조선대패로 일하는 사람은 없다고 봐도 됩니다. 조선대패는 밀어서 깎았습니다.
지금 우리는 당겨서 깎습니다. 일제강점기에 일본대패가 들어왔고, 목수들은 바꿨습니다. 연장 한 자루 바꾼 게 아닙니다.
깎는 방향이 바뀌면 서는 자세가 바뀌고, 힘이 나가는 길이 바뀝니다. 몸이 통째로 바뀐 겁니다.
그때 목수들이 밤새 고민했을까요. 이걸 쓰면 전통이 훼손되는 건 아닌가. 저는 아니라고 봅니다. 고민을 안 한 게 아니라, 그런 고민 자체가 성립하지 않았습니다. 현장에 '전통'이라는 말이 아직 도착하기 전이었으니까요. 연장은 그냥 좋으면 쓰는 것이었습니다. 잘 들면 쓰고, 안 들면 버리고.
목수가 연장에게 묻는 질문은 예나 지금이나 하나뿐입니다. 잘 드는가.
여기까지는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문제는 그다음에 벌어집니다.
그 목수들이 짠 창호가 지금 '원형'입니다. 문화재로 지정되고, 전통의 기준점이 되고, 한 치도 다르게 하면 안 되는 대상이 됐습니다.
일본대패로 깎은 창이 말입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지금 이런 일을 하고 있는 겁니다. 새 연장을 보면 그냥 집어 들던 사람들의 물건을 원형으로 모셔 놓고, 새 연장을 집어 드는 목수에게는 전통을 훼손한다고 말합니다. 이 문장이 이상하게 들리지 않는다면, 그게 더 이상한 일입니다.
어디서부터 엉킨 걸까요. 저는 지정하는 순간이라고 봅니다. 지난 글에서 무늬를 얼리는 태도에 전통주의라는 이름을 붙여 두었습니다.
지정은 그 태도의 제도판입니다. 개인이 하면 태도로 그치지만, 국가가 하면 원칙이 됩니다.
전통을 지정하려면 멈춰 세워야 합니다. 어느 시점, 어느 형태를 붙잡아서 "여기까지가 원형이다" 하고 금을 그어야 합니다.
그런데 창호는 한 번도 멈춘 적이 없습니다. 고려의 창이 다르고 조선 초의 창이 다르고 조선 말의 창이 다릅니다.
살 비례는 발주에 따라 바뀌고, 연장은 좋은 게 나오면 바뀌고, 짜임은 손에서 손으로 건너가며 바뀌었습니다.
그 긴 흐름에서 어느 하루를 붙잡아 원형이라 부르는 순간, 그 앞뒤의 수백 년이 지워집니다. 흐르던 것이 멈춥니다.
박제라는 말을 함부로 쓰고 싶지는 않습니다만, 여기서는 비유가 아니라 정확한 기술입니다. 지난 글에서 살아 있는 것은 얼릴 수 없다고 썼습니다.
그 말은 맞습니다. 그래서 순서가 무서운 겁니다. 얼리려면 먼저 죽여야 하니까요. 박제는 가죽을 남기고 산 것을 버리는 일입니다.
지정도 똑같습니다. 형태를 남기고 태도를 버립니다. 조선 목수가 남긴 것 중에 정말 알맹이는 띠살의 비례가 아니라, 좋은 것을 보면 쓰던 그 태도인데, 지정은 비례를 지키느라 태도를 금지합니다. 가죽을 지키느라 산 것을 버리는 겁니다.
현장에서 부딪히는 시비가 크게 세 가지 있습니다. 옛 비례 그대로가 아니면 전통이 아니라는 디자인 시비.
그 시절 연장이 아니면 전통이 아니라는 연장 시비. 지정된 시점 그대로여야 한다는 원형 시비. 셋이 다른 싸움 같지만 뿌리는 하나입니다.
멈춘 시점을 잣대로 삼는 것. 그런데 그 잣대로 재면 제일 먼저 탈락하는 게 누군지 아십니까. 조선 목수 본인입니다.
그 사람은 멈춘 적이 없으니까요. 자기 스승의 창과 다르게 짰고, 새 연장이 들어오면 손에 들었습니다.
지금 기준을 조선에 가져가면, 원형을 만든 그 손이 전통 파괴범이 됩니다.
전통은 살아 있어서 전통입니다. 살아 있다는 건 바뀐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지정은 살아 있는 것을 다룰 줄 모릅니다.
지정이 할 줄 아는 일은 멈춰 세우는 것뿐입니다.
그래서 이 역설이 성립합니다. 전통으로 지정되는 순간, 그것은 전통이 아니게 됩니다.
이게 저 혼자의 억지가 아니라는 증거가 있습니다. 지정하던 쪽이 먼저 물러섰습니다. 그리고 물러서게 만든 건 학자의 반론이 아니라 노래 한 곡이었습니다. 아리랑입니다. 아리랑은 원형이 없습니다. 가사가 정해져 있지 않아서 부르는 사람마다, 부르는 날마다 새로 태어나는 노래입니다.
살아 있는 것의 표본 같은 물건이죠. 그런데 옛 법으로는 이 노래를 문화재로 지정할 수가 없었습니다.
지정하려면 보유자를 정해야 하는데, 온 국민이 부르는 노래에 누구를 보유자로 정합니까. 원형을 붙잡아야 하는데,
부를 때마다 달라지는 노래의 어디를 붙잡습니까. 반세기 된 제도가 가진 연장이 하나도 들어맞지 않았던 겁니다.
그래서 법을 고쳤습니다. 2015년, 보유자 없이 아리랑을 지정했습니다.
이듬해 시행된 무형문화재법은 반세기 동안 지키던 '원형 유지'라는 말을 내려놓고 '전형(典型) 유지'로 바꿔 썼습니다. 발표도 사과도 없었습니다.
법조문에서 낱말 하나가 조용히 바뀌었을 뿐입니다. 이후로 보유자도 원형도 정하지 않는 지정이 계속 늘었습니다.
씨름이 그렇게 지정되고, 김치 담그기가, 온돌이, 장 담그기가 그렇게 지정됐습니다.
왜 물러섰겠습니까. 막혔으니까요.
살아 있는 것에 원형이라는 잣대를 대면 댈수록 엉킨다는 것을, 반세기 동안 지정을 해 본 쪽이 누구보다 먼저 알게 된 겁니다.
보유자를 안 뽑고 원형을 안 정하는 지정이란, 말하자면 지정은 하되 박제는 하지 않겠다는 선언입니다.
그 몸부림 자체가 자백입니다. 지정이 곧 박제였다는.
물론 그렇다고 엉킨 게 풀린 것은 아닙니다. '전형'이 무엇이냐를 두고 지금도 정리가 안 됩니다.
말을 바꿔서 풀릴 일이었으면 애초에 엉키지도 않았을 겁니다. 그러니 이 역설의 증인은 저 같은 목수가 아닙니다. 지정자 본인입니다.
'전통창호'라는 말이 왜 그렇게 흐릿한지 앞선 글에서 따져 봤습니다만, 답의 절반은 여기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 말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자기가 가리키는 것을 멈춰 세우고 있었습니다. 흐릿할 수밖에요.
살아 있는 것을 가리키라고 만든 손가락이, 가리키는 족족 멈춰 세우고 있으니.
저는 오늘도 일본대패로 창을 짭니다. 조선 목수가 지금 제 작업대를 보면 뭐라고 할지 가끔 생각합니다.
왜 옛날 연장 안 쓰냐고 나무라지는 않을 겁니다.
그 사람들이 그런 사람들이 아니었다는 건, 제 손의 대패가 증명하고 있으니까요.
출처
- 「무형문화재 보전 및 진흥에 관한 법률」 (법률 제13248호, 2015.3.27. 제정, 2016.3.28. 시행) 제3조 — 국가법령정보센터 law.go.kr
- 김홍도, 「기와이기(葺瓦)」, 『단원풍속도첩』 — 국립중앙박물관 (미는 방식의 조선 틀대패가 그려진 1차 사료)
- 문화재청 보도자료, 「민족의 노래 '아리랑', 국가지정문화재 된다」 (2015) — 국가유산청 누리집 cha.go.kr
- 국립민속박물관, 『한국민속대백과사전』(한국의식주생활사전) 「대패」 — folkency.nfm.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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