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목 스튜디오 베타 오픈 — 자유롭게 사용해 보시고, 버그는 메일로 알려주세요.
블로그

하편 — 전통창호, 조상이 만든 그대로여야 하는가

이 시리즈 · 따져 봅니다 · 4화 (전체 4화)

"오래 굳은 것일수록 한 번 더 들여다봅니다"

  1. 1화 솟을창인가, 소슬창인가 — 올바른 표기와 어원
  2. 2화 도깨비는 뿔이 없다
  3. 3화 상편 — 전통창호, 왜 이 말이 이렇게 흐릿한가
  4. 4화 하편 — 전통창호, 조상이 만든 그대로여야 하는가

전통창호가 무엇이냐고 물으면, 많은 분이 결국 이렇게 답합니다.

옛날 방식 그대로, 옛날 모양 그대로 만든 창. 문화재를 수리할 때의 원형 보존 원칙도, 박물관 유리 안의 창도 이 답을 받쳐 줍니다.

그대로 만든 것이 전통이고, 다르게 만들면 전통이 아니다.

이 답을 작업대에 올려놓고 따져 보겠습니다.


먼저 물어야 할 것. 그대로 만드는 일이 가능하기는 한가.


창호는 수백 년째 같은 방식으로 짭니다. 살 짜는 법이 같고, 비례가 같고, 결구가 같습니다.

그런데 같은 창이 하나도 없습니다. 나무가 다르고, 손이 다르고, 그날이 다릅니다.

이건 제 게으름의 고백이 아니라 이 일의 조건입니다. 같은 산의 나무도 결이 다 다르고, 같은 목수의 손도 어제와 오늘이 다릅니다.

조상 목수가 만든 그대로는, 그 조상 목수 본인도 두 번 만들지 못했습니다.

이튿날 같은 창을 주문받았어도 어제와 똑같은 창은 나오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니 전통이 모사라면, 결론은 하나입니다. 전통은 이 세상에 존재한 적이 없습니다.

첫 창을 짠 목수 다음의 모든 목수가 실패자가 됩니다.

이건 정의가 틀렸다는 뜻이지, 목수들이 틀렸다는 뜻이 아닐 것입니다.

반대쪽에서도 물어보겠습니다. 그러면 디자인이 조금 다르면 전통이 아닌가.


옛 창들을 놓고 보면 답이 나옵니다. 시대마다 살 무늬가 달랐습니다.

지역마다 달랐고, 절과 궁궐과 민가가 달랐고, 목수마다 달랐습니다. 앞 세대의 창을 그대로 베낀 세대는 없습니다.

저마다 제 시대의 창을 짰습니다. 디자인이 다르면 전통이 아니라는 기준을 들이대면, 전통을 만들어 온 당사자들이 전원 전통에서 탈락합니다.

이 기준으로는 지킬 전통 자체가 남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이 기준은 힘이 셉니다. 짜임은 옛 법 그대로인데 무늬가 조금 다르다는 이유로 전통의 자격을 거두는 태도 — 여기에 이름을 붙여 두겠습니다.

전통주의입니다. 전통을 지키자는 말처럼 들리지만 하는 일은 반대입니다. 무늬를 얼리는 순간 창은 만들어지는 물건이기를 그치고 박제가 되기 때문입니다.

박제는 죽은 것에만 가능합니다. 살아 있는 것은 얼릴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 전통주의는 전통을 지키는 일이 아니라 전통을 박제하는 일입니다.


양쪽에서 조이면 갈 곳은 한 군데뿐입니다. 전통은 형태에 살 수 없습니다.

완전히 같을 수도 없고, 같아야 할 이유도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어디에 사는가. 나무가 바뀌고 손이 바뀌고 무늬가 바뀌는 동안에도 바뀌지 않고 건너온 것 — 짜임입니다.

살과 살을 어긋나게 맞물리는 법, 힘을 나누어 받는 비례, 못 없이 버티는 결구. 무늬는 세대마다 달랐지만 짜는 법은 이어졌습니다.

전통은 창의 얼굴이 아니라 창의 뼈에 삽니다.


그런데 여기서 한 발 더 가야 합니다. 뼈라고 해서 저절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짜임이 수백 년을 건너온 것은 세대마다 누군가 그것을 다시 짰기 때문이고, 다시 짜려면 지금 그럴 이유가 있어야 합니다.

그 이유를 저는 두 가지로 봅니다.


하나는 타당함입니다. 어금육모라는 짜임이 있습니다.

세 방향의 살이 어긋나게 맞물려 육각형을 이루는 짜임인데, 세 방향에서 오는 힘을 나누어 받아서 얇은 살로도 뒤틀리지 않습니다.

이 짜임을 맞춰 보면 압니다. 이 각도는 지금도 옳습니다. 백 년 전에 옳았던 이유 그대로요.

옳아서 다시 짜는 것 — 이것이 첫 번째 이유입니다.


다른 하나는 자부심입니다.

만든 사람 한 명의 긍지가 아니라, 공동체의 자부심을 말하는 것입니다.

꽃살문의 조각은 성능에 보태는 것이 없습니다. 살 교차점마다 꽃을 새기는 일은 품만 몇 곱절 듭니다. 그런데 그 문짝 앞에는 지금도 사람들이 걸음을 멈춥니다. 만든 목수의 이름은 남지 않았는데, 그 문은 우리에게 이런 것이 있다고 말할 때 꺼내는 물건이 되었습니다. 만든 한 사람의 것이 아니라 그 앞에 서는 모든 사람의 것이 된 셈입니다. 쓸모로는 설명이 안 되는데, 공동체가 제 것으로 자랑스러워하는 것. 자랑스러워서 이어 가는 것 — 이것이 두 번째 이유입니다.


둘 중 하나라도 있으면 그것은 오늘 다시 만들어집니다. 살아 있다는 뜻입니다. 둘 다 없으면 어떻게 될까요. 옛 창 모양을 찍어 낸 물건을 보겠습니다. 지금도 타당하냐고 물으면, 그 모양의 이유였던 짜임이 빠져 있으니 답할 것이 없습니다. 이것을 우리 것이라고 자랑할 사람이 있냐고 물으면, 금형 앞에서 걸음을 멈출 사람은 없습니다. 오래되어 보일 뿐, 살아 있지 않습니다.

오래되었으나 살아 있지 않은 것. 그런 것은 전통이 아니라 관습입니다. 이어지고는 있지만, 이유는 잊힌 것이지요. 전통과 관습은 얼굴이 같습니다. 둘 다 예로부터 해 오던 것의 얼굴을 하고 있어서, 따져 보지 않으면 구분이 안 됩니다. 그래서 따져 봐야 합니다.

야로슬라프 펠리컨이라는 학자가 이 구분을 한 문장으로 해 두었습니다. 전통은 죽은 이들의 살아 있는 신앙이고, 전통주의는 산 자들의 죽은 신앙이라고요. 아까 이름 붙인 그 태도가 이 문장의 주어입니다. 죽은 이들의 짜임을 오늘 살아 있게 하는 것과, 산 자들이 죽은 반복을 지키는 것. 앞의 것이 전통이고, 뒤의 것은 관습으로 남은 것입니다.


이제 처음의 질문에 답할 수 있습니다. 전통창호란 조상이 만든 그대로 만든 창인가. 아닙니다. 그대로 만드는 것은 가능하지도 않고, 조상들도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전통창호란, 조상의 짜임이 오늘도 옳아서 그 법대로 짠 창입니다. 짜임이 옛 법대로라면, 그 창이 어떤 무늬를 그리든 자격은 이미 갖춘 것입니다. 무늬는 원래 세대마다 달랐으니까요. 이번 세대의 무늬가 다른 것은 전통에서 벗어난 것이 아니라, 전통이 늘 해 오던 바로 그 일입니다. 그리고 전통이라는 이름도 그때에만 제값을 합니다. 현재에도 타당하고, 현재에도 자랑스러운 것 — 그런 것만이 이 이름을 가질 자격이 있습니다.


그러니 내일도 공방에서 저는 이 말 없이 일할 것입니다. 띠살을 짜고, 세살을 짜고, 어느 날은 어금육모를 짤 것입니다. 어제와 같은 법으로, 어제와 다른 창을요. 다만 이제는 누가 그 창을 전통창호냐고 물으면 답할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자격은 이름을 부르는 데 있지 않고 짜는 데 있으니까요. 그게 이 일이 수백 년째 살아 있는 방식입니다.














평목 스튜디오의 다양한 패턴 디자인 보러가기

컬렉션 보러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