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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이는 물길이 아닙니다


밀이는 물길이 아닙니다


오래 궁리하고 있었습니다

살 얼굴에 밀이를 내는 일은 품이 만만치 않습니다.

이만큼 들이는 데는 이유가 있을 텐데, 그 이유를 못 찾고 있었습니다. 짜면서 볼 때마다 그 생각이 들었습니다.

빗물 때문이라고 들었습니다. 그럴듯했습니다.



왜 그럴듯했는가

두밀이를 예로 들겠습니다. 살 얼굴에 골을 두 줄 내고, 그 사이에 능선이 하나 서는 모양입니다.

물이 지나가는 길로 읽으면 아귀가 맞습니다.

능선은 물을 끊습니다. 물은 나무 얼굴을 타고 옆으로 번지려 합니다. 그러다 솟은 자리를 만나면 못 넘어갑니다.

골은 모읍니다. 갈라진 물이 골로 떨어져 아래로 흐릅니다.

세로살과 가로살이 만나는 자리에는 틈이 있습니다. 아무리 정밀하게 짜도 남습니다. 톱날 하나 두께쯤 되는 틈입니다. 가로 골에 든 물이 이 틈으로 세로 골에 넘어갑니다.

그리고 우리는 창호지를 안쪽에 바릅니다. 살이 앞에 서고 종이가 뒤에 붙습니다. 물이 살 얼굴에서 옆으로 번져 모서리를 돌면 종이 붙은 자리에 닿습니다. 나무는 마르지만 종이는 안 돌아옵니다.

물이 종이 쪽으로 못 가게 막는 장치. 그렇게 읽으면 전부 설명이 됐습니다.


값이 만만치 않습니다

두밀이는 미는 것만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골을 파면 살의 목이 머리보다 가늘어집니다. 살과 살이 만나려면 이 머리가 상대 살을 통과해야 하는데, 머리가 두꺼우니 안 들어갑니다.

그래서 머리를 목 들어갈 폭까지 다듬습니다. 교차점 전부입니다.

여기는 대패가 못 들어갑니다. 톱을 넣습니다. 끌로 따냅니다. 줄로 갈아냅니다.

작은 자리입니다. 그런데 막히면 부러집니다. 살이 비틀리기도 합니다. 부러진 살은 버립니다.

단면도 줄어듭니다. 제 규칙으로 잡으면 민살을 100으로 놓았을 때 십몇 퍼센트가 깎여 나갑니다. 하필 머리 양옆 어깨가 없어지는데, 살이 바람에 휠 때 제일 크게 버티는 자리가 거기입니다.

이만큼 치르고 얻는 게 뭔가. 그게 궁리의 내용이었습니다.



선생님은 진작 놓고 계셨습니다

이달 초 대구에서 선생님을 뵀습니다. 두밀이 홈이 빗물 골이라는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그런 이야기는 문헌에 없다고 하셨습니다. 후대에 생긴 이야기 같다고요.

찾아봤습니다. 없었습니다.

그래도 놓지 못했습니다. 손으로 아는 것이 있는데 문헌이 없다고 버릴 일인가 싶었습니다.


뒤집힌 자리

넷입니다.


하나. 일본에 없는 것은 비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일본 쇼지에는 울거미에도 살에도 쇠시리가 없습니다. 쇼지는 안쪽 건구라 젖을 일이 없으니 그렇겠거니 했습니다.

그런데 이유가 따로 있었습니다. 일본은 종이를 살 바깥면에 바릅니다. 그 면이 종이 붙는 면입니다. 골을 파면 종이가 뜹니다. 그래서 일본 건구는 오히려 그 면을 더 평평하게, 종이가 얹히기 좋게 다듬습니다.

비를 맞든 안 맞든 팔 수 없는 면이었습니다. 방증이 아니었습니다.


둘. 종류가 많습니다

모접기만 해도 실모, 민빗모, 턱빗모, 둥근턱빗모, 둥근모, 외사모, 쌍사모, 턱둥근모입니다. 얼굴에 내는 면접기가 또 따로 있습니다. 살의 쇠시리가 따로 있고, 울거미의 쇠시리가 또 따로 있습니다.

물 빼는 게 목적이면 잘 빠지는 것 하나면 됩니다.

기능은 이렇게 여러 가지를 만들지 않습니다. 이건 레퍼토리입니다.


셋. 배부른 살에도 이름이 있습니다

오목만 있는 게 아닙니다. 표면이 살짝 불룩하게 나온 살에는 장피살이라는 이름이 따로 붙어 있습니다.

오목은 물을 모읍니다. 불룩한 면은 반대로 물을 양옆으로 흘려보냅니다. 모서리 쪽으로요.

물길이 목적인 계열에 물을 흘려보내는 것이 이름까지 달고 앉아 있습니다.


넷. 이름이 전부 모양입니다

골밀이, 배밀이, 등밀이, 두밀이. 실모, 둥근모, 빗모.

하나같이 생김새를 가져다 붙인 이름입니다. 기능을 가리키는 이름이 하나도 없습니다.

외사와 쌍사는 얼굴에도 붙고 모서리에도 붙습니다. 외사면접기가 있고 외사모가 따로 있습니다. 사(絲)는 자리가 아니라 줄 개수입니다. 한 줄이면 외사, 두 줄이면 쌍사. 물길이라면 자리가 정해져야 하는데 개수만 세고 있습니다.

그리고 적어놓은 것도 있었습니다. 범살창호 만드는 법을 정리한 자료에 "살의 등은 쇠시리를 쳐서 모양을 내고"라고 적혀 있습니다.

모양을 낸다고 적혀 있습니다. 저만 다른 걸 찾고 있었습니다.


사람마다 다릅니다

두밀이 머리를 어떻게 잡느냐는 정해진 값이 없습니다.

제 규칙이 따로 있고, 다른 데서 짠 것을 보면 조금씩 다릅니다. 원인 것도 있고 계란 모양인 것도 있습니다.

원이든 계란이든 물에는 차이가 없습니다. 둘 다 볼록한 머리에 언더컷이 있고, 물은 똑같이 끊깁니다.


눈에만 차이가 있습니다.

물이 정하는 일이었으면 여기서 갈릴 이유가 없습니다. 물 끊기는 최소치가 있으면 다들 그 근처로 모입니다. 못 미치면 안 되고, 넘겨봐야 살만 약해지니까요.

갈렸다는 것은, 맞춰야 할 기준이 없었다는 뜻입니다.


날을 갈 때

그 모양이 정해지는 자리가 있습니다. 밀이대패 날을 갈 때입니다. 날 모양이 그대로 살에 찍힙니다.

원으로 갈지 계란으로 갈지, 어깨를 어디서 꺾을지. 거기서 정합니다.

그때 무슨 생각을 했는지 돌아보면, 이쁘게만 생각했습니다.

물 생각은 한 번도 안 했습니다.


다만 이건 지금 이야기입니다

제가 말할 수 있는 것은 제 손에서 일어난 일까지입니다.

기능이 관습이 되고, 관습이 형식으로 남는 일은 흔합니다. 그 경로를 놓고 보면 오늘 나온 것이 전부 설명됩니다. 기능이 잊히면 변주가 자유로워지니 종류가 늘고, 형태만 남으니 이름도 형태로 붙고, 제약이 풀리니 사람마다 달라집니다.

남은 자리 하나가 그쪽을 가리킵니다. 안쪽 문에는 밀이를 굳이 내지 않습니다. 낼 수도 있고 내는 문도 있지만, 굳이 낼 필요가 없습니다. 대청 쪽 문도 그렇습니다.

모양만이 목적이면 안쪽이야말로 낼 자리입니다. 사람이 앉아서 하루 종일 보는 면이니까요. 그런데 비 맞는 쪽에 몰려 있습니다.

자리는 아직 무언가를 기억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면 선생님이 후대 이야기 같다고 하신 것도, 제가 들은 것도 둘 다 말이 됩니다. 흔적이 말로 남은 것이지요.


그래서

오래 궁리하던 것을 이렇게 정리하겠습니다.

밀이가 왜 지금 이 모양인지는 물로 설명이 안 됩니다. 적어도 제 손에서는 아닙니다.

처음에도 아니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그건 오늘 나온 것으로 못 갑니다.

찾던 이유가 밖에 있는 줄 알았는데, 날을 갈던 제 손에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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