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창호란 | 맞춤·짜임·결구로 빛을 나누는 문
전통창호는 짜임에 못을 쓰지 않고 나무를 짜 맞춰 만든 창과 문을 말합니다. 가는 살을 서로 물려 무늬를 만들고, 그것을 울거미라는 틀에 끼워 고정한 다음, 안쪽에 한지를 발라 완성합니다. 그래서 마당에서 보면 나무가 짜인 모습이 보이고, 방 안에 앉으면 그 짜임이 종이에 비쳐 그림처럼 보입니다.
전통창호의 특징
무늬 이름을 하나도 몰라도 사람들은 전통창호를 금방 알아봅니다. 요즘 문은 대개 판이나 유리처럼 하나의 면으로 되어 있습니다. 전통창호는 가는 나무 선이 수십 개 모여서 면을 이룹니다. 살이 촘촘하게 모인 자리와 비어 있는 자리가 섞여 있어서 멀리서 봐도 리듬이 느껴집니다. 사람들이 알아보는 건 그 리듬입니다.
여기에 한지가 더해지면 살은 빛을 나누는 일을 합니다. 살 사이로 들어온 빛이 종이에 닿아 방 안에 고르게 퍼지고, 살은 그 위에 그림자로 남습니다. 방은 밝은데 밖에서 안은 들여다보이지 않습니다. 유리로는 만들기 어려운 상태입니다.
우리 창호는 바깥에서 볼 때와 방 안에서 볼 때가 꽤 다릅니다. 마당 쪽에서는 살이 서로 물리고 틀에 꽂힌 자리가 감춰지지 않고 다 드러나서, 구조가 그대로 형태가 됩니다. 살 얼굴에 두밀이 같은 밀이를 내고 울거미에 쌍사를 치는 것도 이쪽 면입니다. 절집에서는 살 위에 모란이나 연꽃을 새겨 뜻까지 얹었습니다.
방 안으로 들어오면 사정이 달라집니다. 한지를 살 안쪽에 바르기 때문에 방 안에서는 나무가 아니라 종이에 비친 살을 보게 됩니다. 해가 기울면 그 그림도 따라 기울고, 달이 뜨는 밤에는 희미하게 다시 나타납니다. 창호 이야기를 하면 많은 분들이 이 장면을 먼저 꺼내십니다.
일본 쇼지는 종이를 바깥쪽에 붙이기 때문에 방 안에서 나무 살이 그대로 보이고, 살 위에 꽃을 새기는 일도 없습니다. 종이를 안쪽에 발라 바깥에서는 짜임을(절집이라면 꽃까지), 안에서는 그림을 보여 주는 것이 우리 창호가 가진 뚜렷한 특징입니다.
맞춤, 짜임, 결구
전통창호를 만드는 과정은 크게 세 단계로 나눠 볼 수 있습니다. 살과 살이 만나는 자리를 서로 맞대어 잇는 것을 맞춤이라고 합니다. 그렇게 맞춘 살들이 모여 여러 가지 모양을 이루는 것을 짜임이라고 합니다. 세살이나 정자살, 빗살 같은 이름은 모두 이 짜임에 붙은 이름입니다.
마지막으로 짜인 살을 울거미로 붙잡아 하나로 세우는 일이 남습니다. 이 일은 따로 부르는 말이 없습니다. 장기인의 『창호』도 이 자리를 '살·울거미의 맞춤'이라 하여 맞춤 안에 넣어 다룹니다. 저는 이 단계를 맞춤과 떼어 보려고, 얼개를 짓는다는 뜻의 결구를 빌려 부릅니다. 장부 끝에 쐐기를 치는 것으로 결구가 끝납니다.
가는 살 수십 개가 무너지지 않고 면을 이루며 서 있을 수 있는 것은 이 세 단계가 서로를 받쳐 주기 때문입니다. 못이나 풀에 기댔다면 살을 지금처럼 가늘게 만들 수 없었을 겁니다. 살이 굵어지면 선이 둔해지고, 종이에 비치는 그림까지 달라졌을 겁니다. 잘 짠 문은 살을 아주 조금 헐겁게 물립니다. 나무가 계절마다 늘었다 줄었다 하니 그만한 여유가 있어야 틀어지지 않습니다. 그 헐거움을 잡는 게 목수 일의 대부분입니다.
무늬는 기계로도 금형으로도 얼마든지 베낄 수 있습니다. 하지만 맞춤과 짜임과 결구 없이 무늬만 붙인 문은 겉모습이 아무리 비슷해도 전통창호라고 부르기 어렵습니다. 전통창호의 핵심은 무늬보다 이 짜는 법에 있습니다.
왜 이런 모양이 되었을까
여기서부터는 책에서 읽은 내용이 아니라, 문을 짜면서 제가 하게 된 생각입니다.
문이 어떻게 열리느냐에 따라 문의 몸이 달라집니다. 여닫이는 돌쩌귀가 달린 한쪽 변에 매달려 허공에서 돌기 때문에 무게가 한쪽으로 쏠립니다. 시간이 지나면 문이 처지거나 비틀리려고 합니다. 그 힘을 결구가 버텨야 하니 울거미가 두꺼워질 수밖에 없습니다. 반면 미닫이와 미서기는 무게를 아래 홈대에 내려놓고 미끄러지기만 하면 되니 비틀리는 힘이 거의 없습니다. 울거미도 살도 더 가늘게 갈 수 있습니다. 제 공방에서도 미서기 울거미는 33mm로 정해 두고, 여닫이만 두껍게 짭니다.
그런데 우리 창호는 여는 방식이 유난히 다양합니다. 여닫이, 미닫이, 미서기 말고도 분합문과 들어열개가 있습니다. 대청 앞에 다는 분합문은 여러 짝을 이어 달아 요즘 폴딩 도어처럼 옆으로 접습니다. 접은 문을 통째로 들어 올려 들쇠에 걸어 두는 것을 들어열개라고 합니다. 그러면 방과 대청과 마당이 하나로 트입니다. 벽 노릇을 하던 문이 천장 아래로 올라가 사라지는 셈입니다. 그러다 겨울이 오면 바깥 쌍창 안쪽에 영창을, 그 안에 흑창을 겹으로 닫아 방을 감쌌습니다.
계절에 따라, 또 그날의 쓰임에 따라 공간을 바꿔 가며 살던 집이었고, 그 바뀜을 맡은 것이 문이었습니다. 문이 접히기도 하고 들려 올라가기도 하고 겹겹이 닫히기도 해야 했으니, 그만큼 결구가 받아 내야 할 힘도 많았을 겁니다. 울거미가 두툼해지고 살이 넉넉해진 것은 그 때문이라고 봅니다.
일본에서는 종이 바른 살문을 거의 미닫이로만 썼습니다. 깊은 처마 아래 안쪽에서 홈을 따라 미끄러지기만 하면 되니 쇼지는 가볍고 살도 유난히 가늡니다. 둘을 나란히 놓고 보면 우리 창호가 조금 둔해 보이는 것도 사실입니다. 다만 그 두툼함은 솜씨가 모자라서 생긴 게 아니라, 문이 맡은 일이 많아서 생긴 것입니다. 우리가 조선창호를 떠올릴 때 함께 느끼는 묵직하고 넉넉한 비례도 결국 집이 공간을 다루던 방식에서 나왔다고 생각합니다.
전통창호와 조선창호
1633년에 다시 지은 부안 내소사 대웅보전의 꽃살문도 조선 시대에 짠 것입니다. 우리가 전통창호라는 말을 들을 때 떠올리는 문은 대개 조선 후기에 짜인 것들입니다. 그러니 전통창호의 특징이라 부르는 것은 대개 조선창호에서 본 특징입니다.
이렇게 놓고 보면 말이 조금 분명해집니다. 조선 시대에 짠 창호가 조선창호이고, 오늘 그 짜는 법을 따라 짓는 창호는 조선창호를 잇는 창호입니다. 한옥에 드는 문과 지금 건물에 드는 문은 집이 다르니 크기도 비례도 같을 수가 없습니다. 그래도 맞춤과 짜임과 결구의 원리가 살아 있다면, 무늬나 비례가 조금 달라졌더라도 같은 계보에 있다고 저는 봅니다.
더 알아보기
살 이름: 세살, 정자살, 빗살 등 → 창호 사전
이 말이 왜 이렇게 흐릿한지는 → 「따져 봅니다」 전통창호 1·2·3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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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리즈
전통창호 사전 · 17화 (전체 17화) 연재중
"전통창호의 이름과 짜임을 하나씩 정리합니다"
- 1화 정자살 | 井자로 짠 창
- 2화 세살(細살) | 가는 살을 촘촘히 세운 창
- 3화 빗살 | 살을 비스듬히 걸어 짠 창
- 4화 아자살 | 좋은 뜻이 없는 무늬
- 5화 완자살 | 뜻이 넘치는 무늬
- 6화 숫대살 | 살을 끊어 놓아 짠 창
- 7화 세모솟을살 | 칸이 삼각으로 나오는 창
- 8화 육모솟을살 | 칸이 육각으로 나오는 창
- 9화 격자빗살 | 격자 위에 빗살을 겹친 창
- 10화 귀갑살 | 촉인가 턱인가
- 11화 용자살 | 정자살을 크게 한 창
- 12화 겹으로 다는 창 | 쌍창·영창·흑창·갑창
- 13화 벽에 내는 창 | 봉창·살창·광창·들창
- 14화 작은 창 | 바라지·누꿉·창경
- 15화 살나비와 살두께 | 문짝 두께에서 내려오는 치수
- 16화 마감과 관리 | 무엇을 바르고, 언제 다시 손보는가
- 17화 전통창호란 | 맞춤·짜임·결구로 빛을 나누는 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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